[[분류:외교관]][[분류:토스카나 주 출신 인물]][[분류:1903년 출생]][[분류:1944년 사망]][[분류:총살형된 인물]] ||<:> '''풀네임''' || '''Galeazzo Ciano''' (갈레아초 치아노) || ||<:> '''출신 정당''' || [[국가 파시스트당]] (Partido Nacional Fascista) || ||<:> '''생몰년''' ||[[1903년]] [[3월 18일]] ~ [[1944년]] [[1월 11일]] || ||<:> '''재임기간''' ||[[1936년]] [[6월 9일]] ~ [[1943년]] [[2월 6일]] || [목차] == 개요 == 귀족 작위까지 포함한 정식 이름은 제2대 코르텔라초 부카리 백작 잔 갈레아초 치아노(Gian Galeazzo Ciano, conte di Cortellazzo e Buccari). 한국 국내에는 [[뮌헨 협정]]과 [[추축국]] 결성에 모두 참여한 [[이탈리아]] [[외교관]]쯤으로 알려져 있다. == 생애 == [[이탈리아]]의 [[외교관]] 및 [[외무장관]]. [[1903년]] [[토스카나]]에서 태어났다. [[1930년]] [[무솔리니]]의 장녀인 에다와 결혼하여 그의 사위가 되었다. 주중 [[이탈리아]] 공사를 지낸 적이 있으며 1932년 [[제1차 상하이 사변]] 중 중재를 맡아 [[송호정전협정]] 체결 과정에서 조정인으로 참관했다. 이 때문에 [[장쉐량]]이 1933년 유럽 외유를 떠났을때 그와 교류했으며 장쉐량에게 파시즘 물이 들게 했다. 일설에는 [[장쉐량]]이 치아노의 아내와 바람을 피었다고.(...) [[이탈리아]]의 [[에티오피아]] 침략에서 세운 군공으로 [[외무장관]]에 임명되었다. [[제2차 세계 대전]]내내 무솔리니 정권 하에서 외교업무를 맡다가 전쟁이 [[이탈리아]]에 불리해지자 [[장인어른]]인 [[무솔리니]]에 반대하여 그를 합법적으로 실각시키려했다. 그러나 사위가 자신을 배신하려한다고 격분한 [[무솔리니]]에게 [[사법살인|합법적으로 사형을 당했다.]] 만약 연합군이 1년만 빨리 로마에 입성했다면 징역형 정도로 끝났을지도 모른다. 그러나 [[1943년]] 연합군이 로마로 당도하기도 전에 독일군 특수부대가 그를 반 파시스트 혐의 및 반역으로 체포해 버렸고 결국 나치의 괴뢰정부인 [[살로 공화국]]에서 사형을 당한다. [[무솔리니]]가 반대파들을 [[숙청]]하다가 치아노 또한 포함된 것을 보고 사위를 죽인 것을 후회했다는 [[루머]]가 있으나 근거가 부족하다. == [[대중매체]] == 1985년작 드라마 무솔리니에서는 [[라울 줄리아]]가 치아노 역을 맡았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