||||||||||<:><tablealign="center"> '''< [[1908년]] [[노벨물리학상]] 수상자 >''' || ||||||||||<:>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Nobel_Prize.png|width=220]] || || 1907 - 앨버트 A. 마이클슨 || → || 1908 - '''가브리엘 리프만''' || → || 1909 - [[굴리엘모 마르코니]], 카를 브라운 || Gabriel Jonas Lippmann 생몰:[[1845년]] [[8월 16일]] ~ [[1921년]] [[7월 13일]] [[http://www.newyorker.com/online/blogs/photobooth/110627_paul-marsan-dit-dornac-gabriel-lippmann-1308227061372234_p465.jpg]] [[프랑스]]의 [[물리학자]]. [[룩셈부르크]] Bonnevoie에서 태어났다. 13세에 [[파리(프랑스)|파리]]로 이주하고 1868년에 [[고등사범학교]]에 입학했다. 학생때에 '화학 및 물리학 연보 Annale de chimie et de physique' 편집에 참가하여, 독일 논문을 자주 읽게 되었고, 당시의 전기 연구 상황을 섭렵했다. [[1873년]] 정부파견에 의해 독일로 유학하고 [[하이델베르크]]와 [[베를린]]에서 [[키르히호프]]와 [[헬름홀츠]] 밑에서 연구했다. 전기모세관현상에 주목해 이것을 이용하여 모세관전기계를 발명하고 [[1881년]](1886년?)에는 간섭현상을 이용한 천연색 사진법을 고안, [[1883년]]에는 파리대학([[소르본 대학교]]) 수리물리학 교수가 되었다. [[1886년]]에는 실험물리학 교수가 되어 1892년까지 재직했다. [[1891년]]에 천연색 사진법 실험에 성공했다. 그 밖에 많은 실험장치(무정위전류계, 가속도지진계 등)를 고안했으며, 압전기를 예상했다. 결국 '''컬러사진 감광판을 발명한 공로로 [[1908년]]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.''' [[1912년]] 과학아카데미 원장으로 취임하였다. [[대서양]], SS France에서 사망했다. [[분류:물리학자]][[분류:1845년 출생]][[분류:1921년 사망]][[분류:노벨물리학상 수상자]][[분류:프랑스의 학자]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