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[파일:가래.gif]] [[http://www.rda.go.kr/children/agri/mchi_tool_01_a.jsp|출처]]: 농촌진흥청 어린이 체험관 홈페이지 [목차] == 개요 == 흙을 뜨고 파는 데 쓰는 [[농기구]]. == 형태 == 가래는 생나무를 자루와 몸이 하나가 되도록 깎고 둥글넓적한 몸 끝에 말굽쇠 모양의 쇠날을 끼워 만든 것이다. 몸 양쪽에 구멍을 뚫고 줄을 꿰었으며, 한 사람이 자루를 잡고 흙을 떠서 밀면 양쪽에서 각각 한두 사람이 줄을 당기어 흙을 던진다. 줄의 길이는 대체로 자루의 길이와 비슷하다. 화가래라는 것도 있는데, 사실 [[http://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420064&cid=42961&categoryId=42961|괭이의 일종]]으로, 날의 모습은 가래와 같으나 일반 가래와 달리 날이 직각으로 붙어 있어 생긴 게 괭이랑 비슷하다. 쓰임새도 괭이랑 같다. == 특징 == 삽을 변형시켜 만든 것으로 넓죽한 삽날에 긴 나무자루를 박고, 삽날 윗부분 좌우측에 각각 줄을 매어 사용한다. 보통 3∼5인이 사용하는데, 한 사람은 자루를 잡고, 2∼4인이 양쪽에서 줄을 잡아 당기며 작업을 한다. 삽보다 작업 능률이 높고 여러 사람이 공동작업을 할 수 있다. == 기타 == [[속담]] '[[호미]]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'할 때 가래가 바로 이거. 현대에는 [[굴삭기]]라는 기계가 가래가 하던 일을 대신한다. 일본어로는 すき라고 발음하기 때문에 [[아야베 키하치로|가래입니다(鋤です) = 스키데스 = 좋아합니다(好きです)]]라는 말장난도 가능하다. [[분류:농기구]] [[스키야키]]의 명칭 어원 중 하나로 가장 널리 퍼져있는 이야기로 말 그대로 고기를 가래에 올려 구워먹었기에 스키야키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 있다.[* 이 경우 [[도쿠가와 이에야스]]가 매사냥에서 돌아오다가 새고기를 가래에 구워먹었단 식의 이야기가 덧붙여지기도 한다.] 이러한 이야기에서는 가축의 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던 시절 농민들이 고기를 먹을 때 [[불교]]의 영향으로 육식 자체를 부정하게[* 불교에서 단 한 번도 육식을 부정한 적은 없다. [[스님]] 항목 참조] 여겼기 때문에 조리도구에 부정 탄다고 대용품으로 농기구를 썼기 때문이라고도 하나, 육식이 해금되기 전의 기록에 남아있는 스키야키는 쇠고기가 아닌 [[오리]], [[기러기]], 어패류 혹은 [[고래고기]]를 사용했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.[* 살생금단령으로 먹는 것이 금지된 고기는 소, 말, 개, 원숭이, 닭으로 메이지 유신 이전에도 멧돼지, 사슴, 오리, 기러기 등의 고기는 먹을 수 있었다. 그리고 살생금단령 자체도 그렇게 엄격하게 지켜진 것은 아니어서, 보약이니 모란이니 하는 은어를 써가며 고기를 먹어댔고, 심지어 쇼군조차도 붉은 반점이 있는 소는 먹어도 부정을 타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 그 고기를 먹곤 했다. 쇠고기를 사용한 스키야키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69년이다.] 구이에 사용할 철판이 거의 없었던 당시 여건 때문에 그나마 넓적한 모양새의 농기구인 가래를 썼던 것으로 추측된다.[* 가래를 실제로 본 사람은 알겠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넓어서 고기 한 근쯤은 올릴 수 있다. 게다가 자루가 길어서 대충 들판에 아무렇게나 짚으로 불을 피운 뒤에 고기를 굽기가 편하다. 짚불은 순간 화력도 강하고 이리저리 날리는지라, 넓직한 곳에 피우면 가까이가서 뭘 굽기가 힘들다.][* 그리고 일본은 사철이 많다보니 제대로 된 철기 식재를 구하기도 힘들다.] 실제로 고래고기 스키야키에 대한 1832년의 기록에는 딱히 가래가 아니어도 그냥 많이 써서 잘 닳은 깨끗한 철기를 쓰면 된다고 적혀있다. 현대에도 비슷하게 삽날에 고기를 올려서 [[숯]] 가마나 전통적인 방식의 장작불 [[찜질방]] 등지에서 이러한 고기 구이를 하는 것이 남아있다.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가래, version=129)]